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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석지호님 조회0회 작성일 25-12-13 08:0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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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lotmega.info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우리나라의 명소들이다. 누군가는 경치를 보며 숨을 고르고, 누군가는 순간을 간직하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곳.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지닌 이 공간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조경가 정영선(84)의 손길이 닿았다는 것.
팔순이 넘은 조경가 정영선은 새벽 5시 집 주변의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나무와 꽃, 풀을 돌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건강 비결을 묻자 “잘 먹고 잘 자는 것”이라며 웃었다. “다시 태어나도 조경가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글쎄, 모르겠네. 그냥 조경가가 되겠지, 다시 태어나도.”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 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 조경설계 서 릴게임온라인 안 대표는 여전히 현역이다. 1973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1기로 입학하며 시작한 그의 조경 인생은 반세기를 넘어섰다.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 조경의 역사 자체. 산업화 시기에는 국립공원, 고속도로, 농촌주택 개발 등 국가 기반을 다지는 일에 주력했고, 이후에는 공원과 정원 같은 생활 속 자연을 만드는 데 열중했다. 그의 공로는 최근 몇 년 새 바다이야기게임2 국내외에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23년 조경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계조경가협회(IFLA)의 제프리 젤리코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이듬해에는 그의 삶과 작품을 다룬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고, 다큐멘터리 영화도 개봉했다. 지난달에는 보관문화훈장을, 이달에는 삼성행복대상을 연이어 받았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삽과 호미를 들고 현 릴짱 장을 누비는 그를 경기도 양평 자택에서 만났다. 찬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낸 계절에도 그의 집 주변 작은 정원은 방치된 구석이 없었다. “하루라도 돌보지 않으면 금세 엉망이 돼요.” 그는 이곳저곳 살피며 나무와 풀을 쓰다듬었다. “잘 잤나, 안 춥나” 다정히 말을 걸고, “내년에 다시 보자”며 떨어진 꽃잎에 인사를 건넸다. “정원이 참 예쁘다”는 말에 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그는 손사래를 쳤다. “이게 무슨 정원이에요, 그냥 풀밭이지요.” 그러면서도 자식을 소개하듯 말했다. “저 빨간 단풍은 내장산에서 온 거예요. 참 예쁘지요?” 인터뷰는 2시간가량 진행됐다. 식물에 대해 말할 때는 한없이 소녀 같았고, 일에 대해 말할 때는 누구보다 강단 있는 여장부 같았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 정원 '희원'. 한국 전통정원의 멋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경설계 서안
◇한국 조경史 자체인 50년 조경 인생
―제프리 젤리코상에 이어 큰 상을 여럿 받으셨네요.
“‘할매야, 일 더 해라. 아직 멀었다’는 뜻 아닐까요? 하하. ‘저 할마시 기운도 좋다, 왜 안 물러나고 아직도 일하노’ 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저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더 해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 우리나라엔 다른 나라와는 다른,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저 북에서 제주까지 이어지는 풍광, 삼면이 바다인 지형…. 우리나라 산천 자체가 하나님이 만드신 정원입니다. 이 아름다움을 우리 스스로 먼저 제대로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나라 곳곳이 자꾸 국적 불명의 풍경으로 변해가는 게 마음 아파요. 조경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 흐름을 조금이라도 돌려놓고 싶어요.”
정영선은 실제 작업에서도 한국의 식물을 십분 활용한다. 한국 정원 미학의 정수를 담은 것으로 평가받는 호암미술관 희원(1998년)에는 때죽나무·층층나무·모감주나무 등 한국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 수목과 야생화를 심었다. 디올 성수점(2023년)의 정원을 만들 때, 앞쪽엔 디자이너 디올이 사랑했던 장미와 라벤더 등 원예종을, 뒤쪽엔 소나무·모란·작약·매발톱꽃 등 한국 토속 식물을 심었다. 노란 미나리아재비는 그의 시그니처 꽃이다. “유년 시절 할아버지 산소에서 본 추억의 꽃이 농약 때문에 없어지는 게 아까워서 심을 만한 곳이면 기를 쓰고 심는다”고 했다.
―‘조경은 그저 예쁜 꽃과 나무를 심는 일이 아니다’라고 하셨지요. 조경은 무엇인가요.
“청와대에서 조경담당비서관으로 일하던 은사님(오휘영 한양대 명예교수)이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경치를 만든다’는 뜻의 ‘조경(造景)’이란 말을 만들었죠. 새로운 경관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해서 논란도 많았습니다. 저는 조경이란 태생적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보살피고, 가꾸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원을 만드는 것은 창조자에 가깝지 않느냐”고 하자, 그는 “끔찍한 과장”이라고 했다. “조경가는 연결사예요. 자연과 인간을 잇고, 산천이 오랜 세월 흘러오며 만든 역사와 앞으로 펼쳐질 풍경을 이어주죠. 농촌과 도시가 남남이 되지 않도록 잇고, 건축물의 안팎을 잇고요. 제가 하는 정원은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게 아니고, 존재하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더 돋보이게 하는 거죠. 어느 날 아침 ‘싹 밀어버리고 새로 하자’는 건 조경이 될 수 없어요.”
―조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자연에 대한 경외지요.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태도고요. 조경가든, 공무원이든, 정치가든 내 마음대로 뜯어 바꾸고, 취향대로 휘두르는 건 절대 안 됩니다.”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인 서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의 모습. 버드나무 군락과 갈대, 수많은 수생식물들 속에 수많은 생명들이 있는 공간이다./조경설계 서안
◇김수영의 ‘풀’로 지켜낸 샛강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정영선은 여의도 샛강생태공원(1997년)을 조성할 때, 공무원들 앞에서 김수영의 시 ‘풀’을 읊었다. 버드나무와 물억새가 우거진 샛강을 메워 축구장과 주차장을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시를 읊으실 생각을 했나요.
“그 아름다운 곳을 축구장으로 만든다고 하니 기가 막혀서…. 제가 그때 한강관리사업소 자문위원이었어요. 무슨 미친 소리 하느냐고, 이거 안 된다고, 꼭 보존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풀’을 좔좔 읽으면서 ‘땅의 쓸모는 무조건 멀리 봐야 합니다. 후손들이 어떤 땅에 살게 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고 하니, 공무원들이 ‘정 선생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하더군요.”
-샛강을 지키는 투사셨네요.
“‘돈 안 받을 테니 내가 설계하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10원도 안 받았고, 대신 생태·조류·곤충학자 등 관련 전문가를 다 불렀어요. 나 혼자 한 게 아니고 다 의기투합해서 한 거예요.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니 한 거죠.” 샛강에는 멸종위기보호종인 수달과 맹꽁이,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와 수리부엉이가 돌아왔다.
-선유도공원도 지키셨지요.
“현상 설계 공모가 나와서 현장을 가봤는데,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뻔했어요. 절대로 다 부수지 않기로 했어요. 버려진 정수 시설을 그대로 살리고, 옛것과 새것을 이어주는 방식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쓸쓸한 사람들이 와서 잠시 기대어 쉬어 갈 수 있는 장소였으면 했어요. 어떤 여성분이 삶을 등지러 왔다가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돌리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감사했지요.”
서울 영등포 선유도공원.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공원으로 옛 정수장 시설을 활용했다. 폐허의 흔적 위에 녹색의 생명력이 더해졌다. /조경설계 서안
-서울아산병원 중앙공원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분도 많습니다.
“병원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많은 곳이에요. 환자, 환자 가족, 의료진, 간병인….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새잎이 나면 그걸 보고 살겠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잖아요. 숲에 나와 한껏 울면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왜냐면, 나도 겪었던 일이거든요. 남편이 오래 앓으면서 여러 병원을 옮겨 다녔는데, 어느 병원에 가도 울 자리가 없는 거예요. 심지어 병실 창문으로 장례식장이 보이는 곳도 있었죠.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아산병원) 공원의 모습이 지금과는 좀 달랐겠죠.”
-선생님의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은 무엇인가요.
“하나를 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크든 작든, 내가 정성을 다한 것은 항상 귀엽고 아름다워요. 자식이랑 똑같아. 이 자식은 이래서 예쁘고, 저 자식은 저래서 예쁜 거죠. 집에 누워 있으면 어떨 때는 궁금하기도 해요. ‘오늘은 무슨 꽃이 거기에 폈겠다’ ‘물길이 어떻게 됐겠다’ 이렇게 상상하죠.”
-가장 기억에 남는 클라이언트는 누구인가요.
“이건희 회장님. 제가 하는 일을 진심으로 100% 믿어준 분이었죠. 수많은 의견이 쏟아져도 ‘그대가 한 대로 하라’며 제 손을 들어주셨어요. ‘희원’을 할 때는 외국 조경 회사들이 ‘우리가 해주겠다’며 몰려들었는데, ‘고요한 한국의 풍경을 왜 한국 조경가가 맡지 않느냐’며 저를 부르셨죠.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분이었어요. 직원들이 보고하러 갈 때 다들 우황청심환을 먹었다는데, 나는 회장님과 오만 얘기를 편하게 다 했죠.”
정영선은 일을 맡으면 그 땅을 밤낮으로 찾는다. “이른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비가 미친 듯 올 때도, 바람이 심하게 불 때도 가봐요. 젊었을 때는 백 번도 넘게 찾아갔지요.” 공사가 끝나고도 틈만 나면 다시 가 본다. “내가 한 데가 많으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지. 그래도 잘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자꾸 가보게 돼요.” 아이를 살피는 어머니처럼, 그는 늘 정원 곁에 마음을 둔다.
◇내 자식 같은 정원, 살피고 또 살펴야
정영선의 조경 철학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 궁궐에 대해 남긴 표현이다.
-왜 검이불루 화이불치인가요.
“아주 중요한 말이에요. 저는 이 말이 ‘한국의 미(美)’에 꼭 들어맞는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이 다 그렇습니다. 선조들은 차경(借景·경치를 빌려오다)의 지혜를 갖고 있었습니다. 잘난 체하지 않고, 가장 좋은 경치의 복판에 서기보다 물러서서 바라보는 정자를 짓고요. 얼마나 아름답고 품격 있는 방식인지…. 제게는 우리 산이 교과서예요.”
경북 포항 별서정원. 바다와 해송 등 자연경관을 그대로 담아냈다. /조경설계 서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어디라고 보세요?
“대학원 시절 정자 연구를 한다고 혼자 배낭 메고 여기저기 다녔어요. 다녀본 바, 다 아름다워요. 어느 곳 한 곳만 꼽는 건 거짓말이에요. 풍경마다 제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런데 개발을 너무 많이 했어요. 산꼭대기에 계단을 만드는 걸 보면 나는 눈물이 나요. 관광객 끌려고 하는 수작인데, ‘어쩔 수 없지’ 하면서도 눈물이 나요.”
-정원이 갖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물, 풀, 꽃, 나무, 벌레, 새….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있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꽃과 풀에 말을 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대화를 하시나요.
“식물과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부랑시부랑 말해요. 사람한테 하듯 하지요. ‘안 추웠어? 잘 잤어?’ 하고, ‘너 어데 아프나, 꼴이 왜 그렇나?’ 하고.”
-과거에 기후 위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이 실제로 온다’고 하셨지요.
“지금 이 상태로 가면 큰일 날 거예요. 제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더는 난개발하지 말고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보존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제라도 합심해서 자연을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어요.”
-조경가로 50년, 어떠셨나요.
“50년밖에 안 됐나요? 하하.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일이 똑같아요. 재밌으니까 열심히 하는 거지요.”
정영선은 자신을 ‘거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제가 뭐 대단해서 성공한 게 아닙니다. 그냥 열심히 한 것뿐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건, (조경은) 완공했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제가 후배 조경가들한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공사하고 나서 ‘내 몫은 끝났다’ 하고 떠나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틈만 나면 가보고, 손보고…. 그게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정영선 조경가의 자택은 경기도 양평에 있다. 다정한 산세 끝에 있어 산과 정원이 하나인듯 보인다. 그는 "이곳은 정원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전통 나무나 풀 같은 것들이 왔다갔다 하는 곳"이라고 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영감의 원천은 아버지의 정원과 詩
정영선의 첫 정원은 아버지(수필가 정성표)의 정원이었다. 대구 계성고 교사였던 부친은 학교 사택 뜰에서 염소를 키우고 꽃을 가꿨다. “아버지는 밥은 굶어도 꽃은 심는 분이었어요. 아버지가 옥잠화에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저도 정원 일을 했죠. 꽃이 피는 걸 보면 그렇게 경이롭고 좋더라고요.” 꽃을 좋아하던 소녀는 문재(文才)도 뛰어났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시인 박목월은 백일장을 휩쓸던 정영선을 특별히 아꼈다. 그는 서울대 농과대학 재학 시절 신춘문예로 등단하기도 했다.
-왜 시인이 안 되고, 조경가가 되셨나요.
“다들 내가 시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식물하고 살고 싶었어요. 시를 꼭 원고지에 써야 할까요. 나는 땅에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조경이란 말조차 없을 때, 그 일을 하고 싶어 농대에 갔습니다. 대학에 가보니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당시엔 모든 게 과학 영농, 생산성에 귀결됐지요. 그래서 잡지(주부생활) 기자가 돼서 주택, 정원 기사를 썼죠. 취재하러 갔다가 서울대에 환경대학원 조경학과가 생긴다는 말을 듣고 바로 사표를 내고 시험을 쳤어요.”
정영선은 지금도 시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의 작업 노트에는 메모가 가득한데, 포항 별서정원을 설계할 때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왜 이 현장의 벼랑 끝에 서서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나희덕의 ‘여’(시 ‘여, 라는 말’)를 생각했을까? 설계와 공사를 하는 내내, 이 시의 이미지, 억겁의 시간을 만들어 내는 변화하는 풍경이 가슴에 사무쳤다.’
-요즘은 어떤 시를 품고 계시나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요즘 좋아해요.”
1981년 12월 30일 조선일보에는 ‘조경 기술사 정영선 교수 “산도 옮기고 개울도 만듭니다”’란 기사가 실렸다.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가 된 뒤였다. 기사에는 ‘조그만 얼굴에 역시 손도 작고 키도 작은 이 작은 여장부가 엄청난 일을 척척 해낸다’고 적혔다.
-1호의 길을 걷는 게 고되진 않았나요.
“제가 청주대 사상 첫 여선생이었습니다. 처음엔 분위기가 좀 어수선했어요. 웬 쪼끄만 여자가 오니까 다들 놀란 건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일 했어요. 학생들과 충북시범 공원묘지, 자연학습원, 대청댐, 국민관광단지 같은 걸 하느라 바빴어요.”
디올 성수점의 정원. 디자이너 디올이 사랑했던 장미, 라벤더 등 원예종과 소나무, 모란, 작약 등 한국 식물들을 함께 심었다./조경설계 서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꼬마들을 데리고 정원 만들기, 꽃 가꾸기 같은 모임을 하고 싶어요. 우리 손주 녀석을 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호미질하고, 꽃 심고, 물 주고 하니까 너무 잘해요. 어릴 때부터 자연을 배워야 하는데, 학교 교과서에도 없고 아무도 안 가르쳐주잖아요. 자연 없이 자라면 사람이 이상해져요. 어린이 교육에 필요하다면 나는 얼마든지 헌신할 각오가 돼 있어요.”
-행복한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풀밭에서 호미 든 채로 죽을지 어쩔지 모르지만은, 마지막 날까지 즐겨 하던 일을 즐길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참 귀여우시다’ ‘조경가를 넘어 한국의 진짜 할머니’ ‘최고의 작업을 가능케 한 힘은 생명을 향한 그의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느꼈다’ 등 그가 출연한 영화와 방송 영상에 달린 댓글을 전하자 정영선은 빙그레 웃었다. “참 고맙지요. 제가 사랑해온 이 땅을, 젊은 사람들도 사랑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는 몇 해 전 성종상 서울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원을 인간이 인간답게 살면서 잠시 빌려 쓰는 땅에 대한 ‘헌사’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듯, 우리가 섬세히 손질하고 쓰다듬고 가꾸는 정원들이 모든 이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치유와 회복의 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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