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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모임이 많다. 가족뿐 아니라 사제지간, 동창회 등 여러 모임에서 소풍과 야유회, 운동회를 연다. 옛날 추억 이야기를 부쩍 나누게 되는 달이다. 옛이야기를 서로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함께 나눠 먹던 음식 얘기도 나오게 마련이다. ‘옛날’은 그저 흘러간 과거 시점을 뜻하지만, 옛날 음식이란 이미 추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은 그의 산문집 ‘밥 먹다가, 울컥(2024, 웅진지식하우스)’ 서문에서 “우리는 잘 먹는다. 많이 먹는다. 그렇지만 흘러간 기억 안의 사람들과 먹을 수는 없다. 그게 그립고농심 주식
사무쳐서 잠을 못 이룬다”라고 썼다. 함께 나누던 음식이 사람과의 추억을 소환한다.
그래서 요즘 ‘옛날 음식’이 ‘최신 음식’만큼 인기다. 재료와 솜씨의 구애 없이 트렌드를 일찌감치 앞서나간 음식보다 뭐 그리 대단하다 할 것 없지만 추억이란 양념 하나만으로 사랑받고 있다. 당대를 살았던 이들에겐 추억, 이후에 태어난 이들에겐 호기심으로 실적호전
주목받고 있는 것이 옛날 음식이다.
식탁이 복고(復古)를 향하고 있다. 거리를 돌아보면 1980년대나 볼 수 있었던 간판이 새로이 걸리고 있다. 타일 벽에 걸린 입체로 튀어나온 파나플렉스 간판에는 마치 초창기 컴퓨터마저 도입되기 전의 서체로 쓴 상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행은 다시 돌아온다던가? 외식업계, 아니 사회 문화 다방면에 복고(야마토 릴게임
retrospect)가 득세하는 형국이다.



중국집의 레트로 메뉴인 옛날짜장.


상호나 인테리어뿐이 아니다. 파는 메뉴 역시 예전의 것을 똑 닮아있다. 밀가루와 생선묵이 든 분홍색 소시지부침이며 이를 넣고 차린 양은 도주식ARS
시락은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유행했다. 흥건한 춘장 국물에 감자 따위를 썰어 넣은 ‘옛날짜장’이며 기름에 흠뻑 적셔 굽는 ‘옛날호떡’ 역시 이젠 눈에 익숙한 메뉴다. 눈치 빠른 자영업자들은 박물관을 털 듯 계속 추억 속 옛것을 찾아내 식탁에 올리고 있는데 마침 이게 주효하고 있다.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살던 풍요의 세대들도 케첩과 양배실적호전주
추 샐러드(salad)로 속을 채운 ‘사라다빵’에도, 별 볼 일 없는 고기 패티나 넣은 ‘옛날햄버거’ 집에도 기나긴 대기 줄에 한발 끼워 넣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메뉴 이름은 ‘옛날○○’, 또는 ‘추억의 ○○○’ 등으로 판매한다. 나이 지긋한 중늙은이들은 “옛 추억에 반가워서 찾아왔다”면서, 또 앳된 젊은이는 “듣기만 했는데 먹어보니 신기한 맛이다”라며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니 꽤 성공한 마케팅이 아닐 수 없다.
식품업계도 주목했다. 진로에서 예전 하늘색 소주병에 옛날 로고를 붙여 팔아 재미를 봤고 삼양, 농심 등 라면 회사는 1970년대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다 복고풍 라면을 출시했다. 중장년층의 눈에 퍽 익숙한 빨간색 삼양라면과 한자 농심(農心)이 봉지에 박힌 농심라면 등이 잇달아 판매대를 장식하고 있다. 1981년 출시했다가 1991년 사라진 카레 맛 과자 ‘비(B)29’, 감자칩 ‘클레오파트라 포테이토 칩’ 등 옛날 과자 브랜드도 40여 년 만에 재출시됐다. 맥줏집은 이미 사라진 브랜드 OB와 크라운을 가져다 붙여 호프 체인점을 열었다. 광복 직후 설립한 동양맥주와 조선맥주가 레트로 인기 속에 부활한 것.
복고라고 갖다 붙이면 마냥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복고가 지향하는 옛 시절은 나름대로 ‘좋던 시절’이다. 일제강점기 수탈로 인한 춘궁기나, 가혹했던 한국전쟁 피란 시절 정도는 아니란 뜻. 지금보다야 훨씬 부족했지만 그나마 행복했던 시절, 그때를 겨냥한 것이 복고에 성공한다.



서울 명동 서서갈비의 옛날식 갈비.


그래서 외식업계에선 주로 1980∼1990년대를 지목한다. 가난했지만 경제성장률이 높았고 젊은 인구도 많았던 와중이라 외식업이 흥했다. 1980년대 초반 육식이 대중화되면서 삼겹살과 돼지갈비가 널리 퍼졌고, 중후반 들어선 피자나 치킨, 햄버거 등 국내에 낯선 메뉴도 많이 등장했다. 우후죽순 호프집이 생겨났고 막걸리 집 대신 치킨, 노가리에 생맥주를 마시기 시작하던 시기도 같다.
분식점도 절정을 이뤘다. 지금이야 익숙한 떡볶이, 라면, 김밥 등도 이 시기에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라볶이, 쫄볶이, 즉석떡볶이, 김말이, 만두라면, 해장라면, 즉석김밥 등이 1980∼1990년대 분식점과 노점에 등장한 메뉴다. 요즘 회자되는 ‘옛날 음식’은 대부분 이 시기부터 유행을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2020년대인 현재 주요 소비계층인 30∼50대에겐 각각 30∼40년 전에 주로 먹던 음식이 바로 이때의 것이기에 그들에겐 더욱 감회가 새롭다. 이후 세대에게는 ‘신선함’으로 먹힌다. 레트로 상품은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신제품은 아니지만 이후 세대들이 미처 체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새로운 것’인 까닭이다.



‘손’보다 ‘기계’를 더 쳐주던 시절의 메뉴, 기계우동.


예전과는 한결 달라진 양태다. 지금 복고 트렌드가 추구하던 시대 이전엔 오히려 ‘첨단’ ‘신기술’이 사랑받던 때였다. 당시 신문광고를 보면 ‘최신 핵산복합조미료’ ‘100% 합성’이라는 문구를 당당히 내걸 만큼 공장제 기술력을 자랑하던 시대였다. 심지어 시중 국수 식당들은 이젠 손으로 밀지 않고 제면기를 쓴다며 ‘기계우동’이니 ‘기계냉면’ 간판을 내세우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은 수제가 미덥잖은 구시대의 유물이며, 그나마 기계를 쓰게 되면 어느 정도 이상 품질이 보장된다는 (지금으로 보면) 이상한 신뢰를 철석같이 믿었던 까닭이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직접 밀어서 면을 내던 손칼국수 집이 이제 기계로 만든다고 역으로 유세를 떠는 격이니 세월 속 인식 변화가 우습기만 하다.
나팔바지와 긴 치마, 브로치 등 패션업계에서도 ‘레트로 감성’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소위 ‘할머니즘’ 또는 할머니(동묘) 패션 등으로 불리는 의상과 소품이 여태껏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MZ세대들이 할머니 ‘몸뻬’와 아버지 큰 양복저고리를 입고 다니는 것이 이른바 ‘핫’한 패션 아이템이 됐다.
보고 쓰는 것도 그렇다. 아날로그 감성이라 해서 필름카메라, 구형 디지털카메라, LP, 심지어 카세트테이프까지 불티나게 팔린다. 흑백 감성에 눈독을 들이기도 하고 케케묵은 은판 사진을 찍어가기도 한다. 인테리어 역시 마찬가지다. 첨단 소재나 통유리 대신 옻칠이나 자개, 타일 등 고풍스럽거나 예스러운 장식에 감성을 공유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아무튼 입고 먹고 사는 것 모두에 레트로가 유행인 모양이다.
“옛날 옷이나 옛날 집이라는 말은 흔치 않아도 옛날 짜장과 옛날 국수는 입맛을 당기게 한다.



우리는 그런 호소에 깊게 반응한다. 음식은 추억이고, 누구 말마따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경수필 모음집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 중 한 대목이다. 늘 추억을 극히 옹호하는 저자 박찬일의 말마따나, 우리는 오감 중 유독 ‘미각’으로 옛날을 기억하길 원하는지도 모른다. 한 젓가락 집으면 새록새록 옛 추억이 떠오를 만한 ‘옛날 음식’ 파는 식당 몇 곳을 덧붙여서 소개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노포 이탈리아 식당 ‘라칸티나’의 파스타.


◇라칸티나=그야말로 옛날식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그야말로 옛날식 파스타를 판다. 이름은 올드 패션드(old fashioned). 치즈와 라구 소스의 고기, 해산물 복합 재료 파스타다. 부드럽게 삶아낸 스파게티 면이 피자 토핑처럼 자작하고 진한 소스 맛과 잘 어우러진다. 대대로 서울시청과 을지로의 직장인이 찾는 곳이었지만, 요즘 젊은층이 어찌 알고 찾아온다. 서울 중구 을지로 19 삼성빌딩 지하 1층.
◇고구려 옛날통닭=아마 ‘옛날’이 붙은 메뉴 중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옛날통닭’일지어다. 그만큼 요즘도 대를 이어가며 찾는 이들이 많다는 뜻. 고양시 일산 라페스타에서 오랜 시간 영업해 온 옛날통닭의 명가다. 주문 즉시 통마리로 튀겨주는 닭이 바삭하니 맛이 좋다. 속살도 염지를 잘해 아무 양념 없이도 살코기 맛이 잘 살아난다. 요즘 같은 날이면 통닭 안주에 생맥주를 마시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 고양시 일산동구 중앙로 1305-56 라페스타 D동 108호.



수원 꼬미분식의 옛날식 햄버거


◇꼬미분식=옛날 햄버거를 판다. 어떤 것이 옛날 햄버거인고 하니, 채 썬 양배추 샐러드에 케첩과 마요네즈, 그리고 갓 부쳐낸 달걀프라이가 들어가면 된다. 그리 내세울 것 없는 패티 한 장이 부드러운 달걀프라이와 함께 시너지를 내고 아삭함이 살아있는 양배추 ‘사라다’가 느끼함을 충분히 걷어낸다. 분식점이란 상호처럼 떡볶이 종류도 파는 곳이라 취향껏 곁들여서도 즐길 수 있다. 수원시 팔달구 동말로 39-1.



인천 ‘잉글랜드 왕돈까스’의 돈가스 메뉴.


◇잉글랜드 왕돈까스=처음 가도 어딘가 익숙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배경으로 나온 곳. 그만큼 옛날 경양식집의 분위기를 오롯이 간직했다. 메뉴 역시 옛날식이다. 큼지막하게 튀겨낸 돈가스에 달콤 짭짜름한 소스를 끼얹었다. 가운데 분수가 있는 인테리어부터 메뉴, 서비스 방식 모두가 한결같다. 당연히 수프가 먼저 등장하고 빵과 밥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인천 중구 우현로90번길 7 혜성빌딩 2층.
◇림스치킨=1977년에 시작한 국내 최초 치킨집이자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1호 브랜드다. 무려 48년 전 남대문 신세계백화점 본점 1.5평짜리 매장으로 시작했다. 전기구이 통닭 일색이던 시장에 ‘프라이드 치킨’을 전파한 브랜드. 바삭하고 고소한 기름 맛에 반한 많은 이가 매장을 찾았고 당시 트렌드에 민감한 신사 숙녀의 데이트 코스로 대번에 떠올랐다. 역사를 지키고 있는 혜화점에 가면 그때와 그리 변하지 않은 레시피로 옛 맛과 만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143 1층.